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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석심리학-이부영
    서평 2020. 4. 10. 22:16

    이 책은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대해 한국의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교수이자 한국 융연구원 원장인 이부영 교수님이 쓴 책이다.

    이 책의 서문부터 저자가 분석심리학을 대함에 있어서의 깊이와 겸손함이 느껴진다.

    *책을 통한 이론과 경험의 설명이란 언제나 오해를 낳게 마련이라고 생각된다. 가능한 한 분석심리학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설명하였지만 설명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현상의 파악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내 나름대로 무척이나 정성을 들였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든 이 책이 내 손을 떠나 세상에 나간 이상 모든 이해와 오해와 찬성과 반대와 긍정과 회의와 부정의 심리에 노출됨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당연히 분석 심리학설을 이해하는 과정에 일어나야 할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저자는 분석심리학을 한낱 호기심이나 유행 심리로 안일하게 받아들이고, 이 한 권의 책으로 분석심리학을 모두 터득했다고 경신하는 사람보다는 회의를 가지고 물음을 던지는 사람을 환영하고 싶다. 분석심리학은 끝없는 인간 심리의 심층을 탐구하려는 한 작은 시도에 불과하다.


    총 10장으로 구성 돼있다.
    제1장 분석심리학의 역사적 배경과 방법론적 전제
    제2장 연상 검사와'콤플렉스'론
    제3장 마음의 구조와 기능
    제4장 심리학적 유형론
    제5장 꿈의 해석
    제6장 정신병리
    제7장 정신치료
    제8장 분석심리학과 예술
    제9장 비인과적 동시성론과 심성 연구의 미래
    제10장 분석심리학과 종교

    책을 읽으며 서평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이것에 심취하여 이 책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전달하고자 하였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런 노력이 무의미를 넘어서 내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와전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 시도들은 포기하고 분석심리학에서 칼 융이 말하고자 하는 심리학을 대하는 태도적인 측면과 흥미를 이끌 수 있는 부분을 위주로 짧게 전달해 보겠다.

    p.58
    왜냐하면 인간 심리에 대한 지나친 기계론적 설명은 아직 그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정신의 영역을 몇 가지 단순한 개념의 울타리 속에 가둠으로써 그것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박탈하고 말기 때문이다.

    p.61
    의식이 무의식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과 더불어 살 때 인간 정신의 전체적 실현과 그 성숙은 가능해진다.

    p.61
    언제나 무의식은 의식에 의해서 의식의 말로 표현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의식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바로 무의식 그 자체와 똑같은 것이라고 성급하게 단정을 내리는 것은 삼가야 될 것이다.

    p.65
    또한 무의식은 자아의 무의식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서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반응하게 된다. 자아가 무의식의 내용을 파악하고 그것을 의식화하고자 하면 할수록 무의식은 그의 창조적인 암시를 더욱 활발히 내보내게 된다.

    p.67
    무의식이란 융에 의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 아직 모르고 있는 우리의 정신의 모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너머의 미지의 정신세계 -그것이 무의식이다. 무의식이라는 말은 그런 정신계를 표현하는 데 썩 좋은 말은 아니지만 우선 그대로 쓰고 있고 이것을'미지의 정신계' 또는 '미의식'이라 불러도 상관이 없는 것임은 앞에서 말한 바이다.

    p.68
    그러나'귀신'이라든가'신'이라든가'조상'이란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나'즉 의식의 한계를 넘는 초월적인 힘의 실체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은 결국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생각이 아니고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온 생각인 만큼 우리의 마음속에 그 생각과 비길 만한 내용이나 그 생각을 낳게 하는 원천이 있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p.80
    그림자를 없애거나 그리하여 하나도 티 없는 사람이 되려는 것보다 인간의 마음속에 얼마나 무서운 그림자가 있을 수 있는가를 직시하는 것이 심리학적인 의미에서의 성숙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

    p.82
    사람들이 곧잘 나의 생각, 나의 신념. 나의 가치관, 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결코 자기의 생각이 아니라 남들의 생각, 즉 부모의 생각, 선생의 생각, 다른 친구들의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집단적으로 주입된 생각이나 가치관인데 마치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p.83
    행동규범의 일반성을 표시할 때'모름지기'무엇'이란'등의 말을 잘 쓴다. 남자란, 여자란 이래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은 '페르소나'를 강조하는 말이 된다.'사람이란 모름지기'하고 시작하는 론은 모두 그런 집단 규범이다.'국민 된 도리', 민족의 일원', '선배로서', '후배로서', '상사로서', '아랫사람으로서' 할 때도 모두 페르소나의 차원을 말한다.

    p.83
    집단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자아는 차츰 자기도 모르게 집단정신에 동화되어 그것이 자기의 진정한 개성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p.84
    결혼 30년 동안 성실하게 집안일을 돌보아 온 주부가 남편의 외도를 발견하고 갑자기 히스테리성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를 보는데 그 부인이 이렇게 묻는다.

    -나는 교회 목사님이 하라는 대로 좋은 일을 도맡아 해 왔습니다. 아이들 시중도 열심히 했고 남편의 뒷바라지도 성실하게 해 왔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나쁜 짓을 한 내 남편은 뻔뻔스럽게 돌아다니고 왜 나는 이런 병에 걸려 병원에 들어와 있어야 합니까.

    그녀의 말은 옳았다. 그녀는 모범 주부이며 좋은 어머니 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녀는 집단 사회가 좋다는 것만 따랐고 그녀 자신의 마음을 소홀히 하였다. 어머니로서의 페르소나, 아내로서, 시민으로서의 페르소나에 자아를 완전히 일치시키며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 가족관계의 장애는 그녀로 하여금 그녀 자신을 찾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p.85
    '페르소나'는 가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없애야 할 것이라기보다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자아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자각은 페르소나를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수단이라고 보고 거기에 절대적인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페르소나'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페르소나'와의 맹목적인 동일시가 문제 되는 것이다. 사회적 역할, 의무, 도덕규범, 예의범절, 이러한 것을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맹신하지 않는 것이다.

    p.99
    원형론
    .... 이것은 대개 개인적 무의식에 해당되는 내용들로서 대부분'그림자'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분석이 진행됨에 따라 차츰'모르는 남자', '생소한 곳', '처음 보는 뜻밖의 광경', '검은 괴물'등 현실과의 연관성이 희박해지면서 그 내용은 원시성, 고태성을 띠게 된다. 피 분석자는 이제 개인적 무의식을 통과하여 차츰 무의식의 보다 깊은 층에 가까워진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그는 이제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을 인식해야 할 단계에 온 것이다. 집단적 무의식의 층은 마치 지각 속에 있으면서 좀처럼 직접 밖에 노출되지 않는 불덩어리와 같은 것이다. 화산이 폭발할 때 우리가 비로소 그 존재를 인지할 수 있듯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은 어떤 사람이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혔을 때 비로소 의식 표면에 나타나 그 모습의 일부를 보여 준다. 혹은 그것은 지하의 물줄기처럼 의식화의 작용, 즉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그 내용을 의식으로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함으로써 비로소 솟아 나오는 창조의 샘이다.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은 항상 의식에 작용하며 영향을 주고 있으나 대개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 채 지나치게 된다.
    p.99
    원형을 말할 때 우리는 첫째로 그것이 단순한 지적인 개념이 아니라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p.106
    융의 원형론은 융의 다른 학설이 모두 그러했던 것처럼 경험을 통하여 얻은 가설이다. 그는 문화적 배경을 달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꿈을 관찰하였고 거기에 문화적 배경이나 인종과 관계없이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신화적 요소를 발견하였다. 이러한 요소가 교육이나 학습과도 관계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의식 속에 출현하는 신화적 요소는 또한 분열증 환자의 환각이나 망상에 그대로 나타남을 보았고 그것과 원시인들의 사고내용이 유사함도 원시 사회의 실지 답사를 통해서 증명할 수 있었다,

    p.111
    그러나 자아의식이 이런 무의식의 내용을 소화할 만큼 건전하면, 그는 이런 원형의 체험을 통하여 큰 진리를 터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들이 겪는 이른바 계시의 신비 체험에서 우리는 그 예를 본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책의 후반부에 가면 종교나 초자연현상적인 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이 어쩌면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이 언급될 수도 있는 관심거리 겠지만 융은 심리치료사이자 학자이다.
    한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평생을 걸쳐 이렇게 심도있게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그 내면 깊숙한 곳에서 발견한 미지의 세계에 대해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건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있지 않았으면 불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열증 환자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 그들을 그냥 환자로만 보지 않고 인간으로 대하며 기계적 유형론으로 정신병을 분류하여 치료하려 하지 않고 그 사람의 내면, 즉 마음을 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소통하며 위로하고 치료하는 과정이 인간이 인간에게 대할 수 있는 최고의 박애와 자비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예수와 부처가 각자 박애와 자비의 이념으로 보여준 감동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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