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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자본-토마 피케티
    서평 2020. 7. 3. 20:01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

     

    자본에 대한 역사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저자는 현재 인류 역사에서 구할 수 있는 자본에 대한 자료를 모두 모아 자본에 대한 동학을 분석한다.

    저자는 '21세기 자본'이라는 제목으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부의 분배와 소득불평등이라는 주제로 책을 써나간다.

    그리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자본에 대학 동학을 살펴본 바로 자본의 힘과 속성은 명확하며 현재 불평등은 다시 한번 최고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본의 동학은 어떠하며 저자가 주장하는 소득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서장과 본문 16장, 결론, 주, 찾아보기로 구성돼있으며 서장과 결론 부분이 저자의 관점과 주장을 단도직입적이고 명확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서장에서 저자의 주장을 살펴보자

    저자 토마 피케티의 경제학자로써 자본을 바라보는 관점을 볼 수 있는 주장들이다.

     

    p.8

    자본의 수익률이 생산과 소득의 성장률을 넘어설 때 자본주의는 자의적이고 견딜 수 없는 불평등을 자동적으로 양산하게 된다.

    ......

    이러한 불평등은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능력주의의 가치들을 근본적으로 침식한다.

     

    p.9

    그러므로 부의 분배라는 문제는 언제나 주관적이고 심리적이며,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고 갈등적인 면을 갖게 된다. 이는 과학적이라고 하는 어떤 분석을 통해서도 쉽사리 완화할 수 없는 것이다.

    .....

    정확하게 정의된 자료와 연구방법, 개념이 없을 경우에는 어떤 것도 주장할 수 있고 동시에 그 반대의 주장도 할 수 있다.

     

    p.10

    사회과학에서의 연구는 언제나 잠정적이고 불완전한 것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사회과학적 연구는 경제학, 사회학, 역사학을 정밀과학으로 변형시키려는 오만한 주장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그 연구는 대신 끈기 있게 사실과 패턴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인 작동 원리들을 차분하게 분석함으로써 민주적인 토론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그 토론의 관심이 좋은 질문들에 집중되도록 할 수 있다. 이런 연구는 토론의 용어들을 끊임없이 다시 정의하고, 선입견이나 사기를 폭로하고, 모든 것이 비판적인 검증을 받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바로 사회과학 연구자를 비롯한 지식인들, 그리고 누구보다도 연구에 바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진(그리고 그 연구에 대한 보수까지 받는 귀중한 특권을 가진) 운 좋은 시민들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역할이다.

     

    p.17

    최초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이 전개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들의 핵심적인 질문은 단순한 것이었다. 반세기 동안의 산업적 성장을 이룬 다음에도 대중의 상황이 여전히 그전처럼 비참하다면, 그리고 8세 미만 어린이들의 공장 노동을 금지하는 것이 입법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면, 산업 발전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이 모든 기술 혁신과 이 모든 노역과 인구 이동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기존 경제와 정치체제의 파산은 명백해 보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장기적인 체제 변화에 관해 알고 싶어 했다. 그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스스로 설정한 과제였다.

     

     

     

    그다음 쿠즈네츠의 이론에 대해서 나온다.

     

     

    p.20

    쿠즈네츠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더 높은 발전 단계에서는 소득불평등이 경제 정책 선택이나 국가 사이의 다른 차이와 무관하게 결국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안정될 때까지 자동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p.21

    쿠즈네츠의 이론이 1980~1990년대에 발휘했고 오늘날에도 어느 정도 발휘하고 있는 큰 영향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것이 이런 종류의 이론들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철저한 통계 작업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p.24

    그의 생각은 산업화 초기 국면에서는 단지 소수만이 산업화가 가져다주는 새로운 부의 수혜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불평등이 커진다는 것이다. 또한 나중에 더 진전된 발전 단계에서는 전체 인구 중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나눠 가지면서 불평등은 자동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p.25

    그럼에도 이 황홀한 쿠즈네츠 곡선 이론은 많은 부분 잘못된 논거들로 이루어졌으며 그 실증적 토대는 극히 취약했다. 1914년에서 1945년 사이에 모든 부유한 국가에서 나타난 소득불평등의 급속한 감소는 무엇보다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쟁이(특히 많은 재산을 가진 이들에게) 불러온 강력한 경제적, 정치적 충격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이는 쿠즈네츠가 묘사한 산업부문 간 이동의 평화로운 과정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p.26

    성장이 자동적으로 균형을 찾을 것이라고 믿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학자들이 이른바 대표적 경제주체 모형에 바탕을 둔 극히 단순한 수학적 모형들에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다시 중심적인 문제가 되면 우리는 과거의 변화와 현재의 추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역사적 자료를 가능한 한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끈기 있게 사실과 패턴을 확인하고 서로 다른 나라들을 비교함으로써 불평등의 작동 원리를 밝히고 미래에 대한 더 명료한 견해를 얻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케티가 본 자본

     

     

     

    p.35

    즉 지식의 확산은 언제나 당연하고 자동 적인 것은 아니다. 이는 또한 교육 정책, 적합한 기술 습득과 교육 기회에 대한 접근성, 관련 제도에 크게 좌우된다.

     

    p.39

    느리게 성장하는 경제에서는 당연히 과거의 부가 지나치게 큰 중요성을 갖게 된다.

    .....

    더욱이 자본수익률이 오랜 기간 성장률을 크게 웃돌면(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성장률이 낮을 때는 그럴 가능성이 커진다) 부의 분배에서 양극화 위험이 매우 커진다.

    내가  r>g라는 부등식으로 표현할 이 근본적인 불평등은 이 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여기서 r은 연평균 자본수익률을 뜻하며, 자본에서 얻는 이윤, 배당금, 이자, 임대료, 기타 소득을 자본총액에 대한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g는 경제성장률, 즉 소득이나 생산의 연간 증가율을 의미한다.)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 이 책의 논리를 전체적으로 요약하는 것이다.

    19세기 이전의 역사에서 대부분 그랬고 21세기에 다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듯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크게 웃돌 때는, 논리적으로 상속재산이 생산이나 소득보다 더 빠르게 늘어난다고 할 수 있다. 물려받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자본에서 얻는 소득의 일부만 저축해도 전체 경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본을 늘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상속재산이 노동으로 평생 동안 쌓은 부를 압도할 것이고 자본의 집중도는 극히 높은 수준에 이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수준의 집중도는 능력주의의 가치, 그리고 현대 민주사회의 근본이 되는 사회정의의 원칙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

    이 책의 첫 문장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전반적으로 이문장을 많이 인용한다. 서장에서도 알 수 있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피케티란 사람이 민주주의에 대한 이념에 입각해서 현 자본주의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피케티의 말처럼 자본의 집중도와 능력주의의 가치와 민주사회의 근본이 되는 사회정의의 원칙에 대한 부분은 쉽게 단정 지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에서 말해주는 자본의 동학에 대해서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럽과 미국 대륙 기준으로 

    산업혁명이후부터 1914~1945 두 차례 세계대전이 발생하기 전까지 소득불평등이 최고조에 다란다.(소득 불평등은 총소득에서 상위 1~10%가 차지하는 몫으로 나타낸다)

    미국과 유럽에서 상위 10퍼센트가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이  1914년 직전에 50% 가까이 올라갔다가 1914년 이후 감소하여 1960~1970년대까지 저점을 찍고 2010년 현재 다시 50%대를 회복했다.

     

    이런 자본의 동학속에서 다양한 자료들의 분석을 통해서 어떤 정치적인 움직임이 소득불평등을 가속화하거나 줄였는지, 또 이 시기 동안 어떤 종류의 자산이 증가하고 감소했는지(공공자산, 민간자산, 등등), 상위 10%의 소득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나눠지는 상위 1%와 9%의 불평등(상위 1% 안에서도 자본의 자본집약적인 모습은 더욱 두각을 나타낸다.), 미국의 노예제도와 자본의 관계, 전쟁 후 유럽 대륙에서의 사회주의 정책의 효능, 노동소득의 불평등, 자본수익률, 경제성장률, 인구증가율, 저축률 등등 정말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또 이러한 자료들이 어떻게 조사됐는지 까지도 짚어본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러한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 자본에 대한 누진세를 강력히 주장한다.

     

    p.604

    그러므로 누진적인 과세는 언제나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다. 자유로운 경쟁과 사적 재산을 인정하면서도 사적인 유인이 잠재적으로 급진적인 방식으로 수정되지만 언제나 민주적 토론에서 충분히 토론된 원칙에 기초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따라서 누진세는 사회적 정의와 개인의 자유 사이에 이뤄진 이상적인 타협을 나타낸다.

     

     

    p.609

    만약 우리가 모든 선진국을 살펴본다면,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나타난 소득세 최고 한계 세율의 감소 규모가 같은 기간에 국민소득에서 상위 1퍼센트의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한 규모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 두 가지 현상은 서로 완벽하게 관련되어 있다. 즉 최고세율이 가장 크게 인하된 국가는 국민소득에서 최고 소득자가 차지하는 비율, 특히 대기업 최고위 경영진의 급여가 가장 크게 증가한 국가다. 반면 최고세율이 그리 많이 인하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국민소득에서 최고 소득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더 완만하게 증가했다.

     

    p.614

    우리가 제시한 수치가 상위 1퍼센트 내지 0.5퍼센트의 소득계층에서 나타나는 극도로 높은 소득 수준에만 적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연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의 소득에 대해 약 80퍼센트의 세율을 부과한다면 미국의 경제성장을 둔화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무익한(심지어 해로운) 행위를 합리적으로 억제하고 실제로 성장의 과실을 더욱 널리 분배할 수 있을 것이다.

     

     

    p.621

    자본세의 주된 목적은 사회적 국가의 재원을 조달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를 규제하는 것이다. 첫 번째 목적은 부의 불평등이 끝없이 증가하는 것을 막는 것이고, 두 번째 목적은 금융 및 은행 제도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금융과 은행 시스템에 효과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본 세는 우선 민주적 투명성과 금융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즉 누가 전 세계에 어떠한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지가 명확해야만 한다.

     

     

    책을 다읽고나니 드는 생각은 명확했다.

    자본의 동학은 확실한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은 자료가 있다. 하지만 불평등이란 것에 대한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불평등이 정말로 해소되어야 할까? 능력주의나 민주주의, 이런 이념은 자유와 평등 안에서 만들어진 게 아닌가? 우리가 원하는 자유와 평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것에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위에 자유와 평등에 맞는 올바른 사회적 이념을 세우고 나서야  자본에 대한 장려와 규제를 고려하고 실천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피케티의 주장처럼 민주적인 토론에 의해서 세워져야 하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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