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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학과 종교-칼 융
    서평 2020. 7. 18. 14:51

    심리학의 관점으로 종교를 바라보고 해석한다면 어떤 현상이 관찰될까

    칼융의 분석심리학 세계로 들어가보자면 이것은 학문적이지 못하고 비합리적인 판타지 처럼 느껴질 수 도 있다.

    이에대해 칼융은 인간의 심리현상 자체가 비합리적인 것 이라고 말한다.

    이런 전제를 받아들이고 본다면, 우리가 자기 자신의 무의식적인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이것에 대해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면 당신은 이제 자기 자신을 마주하기위한 자세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머리말과 세장의 본문으로 구성돼 있다.

    1.무의식의 자율성

    2.도그마와 자연적 상징

    3.자연적 상징의 역사와 심리

     

    이책에서 알려주는 심리학이나 종교 둘 중 어느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든 그것에 대해서 의문이 남지 않도록 설명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 대해서 칼융도 서술하고 있으며 여기서 칼융이 제시하는 개념에대한 대략적인 부분을 살펴보자.

     

     

    칼융이 말하는 종교란 누미노즘 체험을 통하여 변화하게된 의식의 독특한 태도를 말한다. 여기서 누미노즘에 대한 설명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지는데 칼융이 말하기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의식에 독특한 변화를 가져오는 눈에 보이지않는(간혹 보이기도하는) 존재의 영향 정도로 보면 될것 같다.

    즉 종교란 미지의 체험으로 인한 변화, 다시말하자면 무의식(미지)의 체험으로 인한 의식의 변화라고 설명해 보고자 한다. -무의식과 의식의 상호작용-

    이것은 종교적 현상이라고 설명하는게 좀 더 매끄럽다고 생각되고 이런 종교적 현상에대해 오랜시간 축적되어온 정보가 ‘도그마’이다.(종교적 교리가 오랜시간 행해져 응고된것)

    도그마를 간단하게 설명하기란 쉽지않다. 도그마는 위에설명한 종교적 체험의 축적, 즉 비합리적 현상에 대한 기록 혹은 역사이기때문에 타협 될 수 없는 교리 ,혹은 절대 진리 라는 표현으로도 설명 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에서는 이런 도그마가 의례(의식)같은 형식으로 실현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에서 표현되는 도그마라는 것은 그리스도교에서만 나타나는게 아니라 다른 여러 종교에서도 볼 수 있다.

    이책 전반적으로 그리스도교(기독교)를 예시로 주로 설명하는데 이것은 칼융이 기독교적인 신앙심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이런 점에 대해서 칼융 본인도 설명한다)

     

    칼융은 이런 종교적 체험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도 있다는 것 처럼 얘기를하는데 나는 여기서 말하는 문제가 칼융이 치료하는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신경증같은 현상도 포함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집단으로 넘어간다면 그문제가 큰전쟁으로 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신내림을 받아야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정신분열증 같은 현상과 매우 흡사하다고 본다.

     

    그리스도교는 오랜 역사동안 도그마라는 울타리로 이런 문제가 생겨나는 것을 방지하고 오직 그들을 통해서만 이런 체험이 가능하게끔 했다.칼융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들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부터 보호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가 등장하면서 문제가 생겨난다.

    프로테스탄트는 그리스도교가 오랜세월 쌓은 울타리를 허물어 버리고 도그마보다 성서(이론)를 진리로 삼는다. 프로테스탄트의 도그마는 점점 변질되어 그 힘을 잃어버려 현재는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성서는 누미노즘 체험의 비합리적인 현상을 이론적으로 해결하려 하여(사실 이들이 이런 문제에대해서 파악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인류는 크나큰 파괴적분열의 양상에 직면한다. 여기서 이런  그리스도교 도그마의 방어가 없는 체험을 ‘직접체험’혹은’개인적인 체험’이라고 표현하는 듯 하다.

    p.96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학문적인 이론이 아무리 정밀하더라도, 심리적 진리라는 면에서 보면, 그 가치에 있어서 종교적인 도그마보다 더 좋은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즉 도그마는 비유에 의해서 어떤 비합리적인 것의 전체를 표현하는 데 대하여 이론은 필연적으로 고도의 추상성을 띠고 있고, 오로지 합리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심리적 존재와 같은, 극히 비합리적인 사실의 실체를 보증하는 데는 도그마 쪽이 훨씬 적합합니다.

    p.98

    이론은 그 성질상 체험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감정적 요소를 도외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데 반해, 도그마는 그 감정적인 면을 가장 잘 포용하고 있습니다. 학문적 이론은 곧 다른 학문적 이론에 의하여 능가될 운명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그마는 무수한 세기를 통해서 그 명백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 후반부 ‘자연적 상징의 역사와 심리’에서는 숫자4의 종교적 의미를 설명한다.

    칼융이 말하길 종교현상(꿈)에서 숫자4는(정확히는 숫자4라기보단 네가지,네개의 어떤것) 원형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이런 숫자4의 의미를 찾아볼 수 없고 숫자3이 중요하게 여겨진다.(삼위일체)

    이러한 배경에서 칼융은 숫자4의 원형적인 측면을 포착했고(사람들의 꿈속에서) 이것에 대해서 추적(다양한 신화)한 결과 이것은 분명히 원형으로써 의미가 있고 숫자4는 신을 뜻한다고 말한다.(4각의 원이라는 형태로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융은 자신이 조사한 것들을 바탕으로 설명하는데 그리스도교에서 빠진 마지막 숫자를 추적한다.

    다양한 설명을 하긴하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마지막 숫자4의 상징은 푸른색,여성(어머니),대지(땅),악마이다.

    칼융의 사상을 종합해 보면 마지막 숫자4가 가지는 이런 의미는 필연적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성의 힘으로 세워진 시대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합리적인 이성이(과학)중요시되고 많은 부분을 파악하였고 지금도 알아가고있다.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이성에 대비되는 감성(감정)적인 측면의 소외는 필연적이다.

    칼융식으로 말하자면 이런식의 소외는 강한 억압을 의미하고 부정적인 현상과 결과를 낳게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칼융이 본 두개의 용이 세계 1,2차 대전으로써 나타나고 그것으로 우리 세계가 어느정도 균형을 되찾았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

    내가 이해한 분석심리학의 관점으로 보자면 이런 현상들의 발현은 필연적이다. 왜 필연적이냐하면 인간 내면에 이런 것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때문이라는 간단명확한 사실이 있다.

    종교적 관점에서 말하는 선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여 우리 인간 내면에 선이라는 관념만 존재하기란 불가능 하다.

    어둠이란 관념은 빛이없다면 존재할 없다. 위쪽 이라는 개념은 그에 대비하는 아랫쪽 이라는 개념 없이는 존재할 없다.삶과 죽음은 따로 볼 수 없는 동일 한 것이다. 누군가 선하다고 하는 개념은 악하다는 개념의 실증이다. 이런 부정 없는 사실이 있듯이 인간의 내면에 잠재 있는 우리가 부정하는 요소들을 무시하지 않고 마주하고 탐구하여 자신의 본질로 받아 들이는 것이 온전한 자기 자신을 이루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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